직부(直赴)가 돌아오고 신은(新恩, 새로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와서 두 차례 편지를 받아 볼 수 있었으니 위로가 되네. 그간에 벼슬살이는 평온하고 수(壽) 조카는 학업을 잘하고 있으며, 청동(淸洞)의 일안(一安) 역시 잘 지내고 있는가? 참봉(參奉)은 그간에 집을 나왔으리라 생각하네. 시축(詩軸) 23개를 보니 대략 술상의 단란한 모임이 객지에서의 근심을 문득 잊게 함이 있구려. 이 고을에 비하면 태평한 기상이라고 할 수 있으니 칭송해 마지않을 뿐이네.
이곳의 참판(參判)의 병은 담수(痰嗽)가 아직도 낫지를 않아 때때로 가슴과 겨드랑이가 당기는 통증을 견딜 수 없을 때가 있고, 낮에는 증상이 가볍고 밤에는 증상이 무거우며 가끔 한두 술의 피를 토하기도 하니, 이는 바로 묵은 증상에 더해 고통이 심해진 것이라네. 의약을 다방면으로 시험해 봐도 조금도 효험이 없으니 이 근심이 어찌하면 가벼워지겠는가? 조실(趙室)을 지금에서야 보냈으니 그 시아버지의 종상(終祥, 대상(大祥)을 마침) 때문이었네. 어린아이들은 무탈하니 기특하고 다행스럽네.
동학(東學) 무리들의 소요는 모두 수포(搜捕, 색출해 체포함)에 겁먹어 배도(背道)하고 귀화한다고 하였네. 그리하여 그 수괴만 주벌하고 그 아랫사람들은 풀어 주었는데, 군기(軍器)를 탈취하는 변고를 일으킨 박운(薄雲)의 세 수괴-강채서(姜采西)ㆍ최명기(崔明基)ㆍ이일선(李一善)-는 아직 잡지 못하였다네. 순사(巡使)의 뜻은 무마(撫摩)를 위주로 하지만, 지금 만약 엄히 다스리지 않으면 반드시 다시 봉기할 우려가 있네. 만약 다시 봉기한다면 전보다 심할 것이니 이것이 크게 우려가 되는 부분이라네.
고부(古阜)의 적세(賊勢)가 매우 성대하다고 하는데, 뒤이어 전보(電報)가 있었는가? 이는 마을의 낭정(廊丁)이 수성군(守城軍)으로서 자세히 조사하여 보내준 것으로 난리 가운데의 일 아님이 없으니 어찌해야 하겠는가? 지금 듣자니 공주(公州)의 군대가 들어가고 단지 청주(淸州)의 군대만 있다고 하며, 부상(負商)은 지패(紙牌)로 일을 행한다고 하네. 나머지는 아랫마을의 인편을 통해 부치고 여기서는 이만 줄이네. 격식을 갖추지 못하였네.
갑오년(1894, 고종31) 4월 20일. 백형(伯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