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키 히코타로(白木彦太郞)가 본관에게 보낸 서장(書狀) 사본 배계(拜啓). 지난번에는 공무다망하신 가운데 관(館)을 방문하여 폐를 끼치고 실례가 많았습니다. 그때 여러 가지로 간곡하신 유시를 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잠시 경성(京城)에 가서 동학당이 진정되기를 기다릴 생각이었으나, 공주(公州)에서 짐을 맡은 여관 주인이 자꾸만 출장을 재촉하고 논산(論山)과 호남(湖南)에서는 도자기 판매에 이문을 붙이기 어렵다고 하여 급히 공주에서 논산ㆍ호남 지방으로 출장하여, 지금은 황산(黃山)에 머물고 있습니다. 매년 전라도 주변 사람들을 대상으로 공주(公州) 장(場)이 크게 열렸는데, 올해는 불행히 그 일대가 동학당의 근거지가 되어 지금 상황에서는 언제 진정될지 알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큰 장이 열릴 날짜조차 확실히 정해져 있지 않으며, 더군다나 평상시의 각 장도 아주 쓸쓸하여 전혀 매매가 없고 모든 것이 들썩거리고 있습니다. 이곳 황산ㆍ논산ㆍ호남 근방은 모두가 쌀 생산지라 짐도 어지간히 가지고 왔었는데, 이번에는 군량미의 징발을 두려워하여 투매할지도 모른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해서인지, 수용자의 수가 늘어나 도리어 파는 자가 배짱을 부려 다소 시세가 좋은 편입니다. 이곳은 전주(全州)에서 10리 떨어져 있고 영광(靈光)ㆍ법성(法聖) 등지와는 20여 리나 떨어진 먼 곳입니다. 그러나 날마다 동학당의 상황에 대한 소문으로 시끄럽습니다. 어느 마을이고 부사(府使)로부터 장정에 이르기까지 무기 등을 소지한 자에게는 모두 출진할 준비를 하도록 명령하고 엄중히 경계하고 있기 때문에 인심의 소요가 심상치 않습니다. 이곳 황산에는 관(官)의 쌀 창고가 있어 부사가 마을 장정 50여 명에게 지키라고 명하여 밤마다 끝이 뾰족한 창을 가지고 큰 소리를 내면서 창고지기를 담당하고 있는 까닭에 마을 사람들은 근처에서 전쟁이 시작된 것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입니다. 4,5일 전 영광부(靈光府) 관할인 법성으로 공미(貢米)를 실어 가기 위해 입항한 한양호(漢陽號)에 갑자기 동학당이 난입하여 일본인 4명과 조선 관리 2명을 잡아갔습니다. 잠시 후 일본인은 방면된 모양인데, 그들은 횡포한 상황에 정신이 나가 닻 등은 그대로 팽개치고 군산까지 도망쳐 왔다고 실제로 본 사람이 이야기했습니다. 한때는 일본인도 손을 뒤로 묶었다고 하는데, 동학당 중에도 일본인을 놓아주라고 말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놓아주지 말라고 말하는 자가 있어 갑론을박 끝에 방면했다고 합니다. 영광에 1만여 명의 동학도가 모여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도리어 동학당의 일에 대해서는 풍설이 구구하여 진위를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초백(草白). 음력 4월 23일 전라도 황산(黃山) 천장욱(千章郁) 댁(宅) 히라키 히코타로(白木彦太郞) 이상 참고삼아 일단 보고드립니다. 1894년 6월 2일 인천주재 2등 영사 노세 다쓰고로(能勢辰五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