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대일(艦隊一) (58) 1894년 6월 12일 경상도 내 동학당, 기타에 관한 휘보 지난달(5월) 중순경 경상도 내의 김산(金山)ㆍ지례(知禮)ㆍ거창(居昌) 세 곳에서 불온한 싹이 트기 시작하여 동학당이라는 혐의로 대구(大邱)로 잡혀간 자가 20여 명 있었는데, 그중에 3명이 동학당의 은어(隱語)를 품에 숨기고 있었으므로 현재 대구에서 엄히 심문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이 은어라는 것은 “위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고지(爲天柱造化定永世不忘萬古知)”의 13자로, 이전에 동학당의 거두라고 일컬어지던 전라도 광양(光陽)의 이(李) 모(某)라는 자가 지은 말이라고 합니다. 경상도에서도 충청도ㆍ전라도와 접경한 각 지방에 동학당의 수가 많고 특히 선산(善山)ㆍ상주(尙州)의 깊은 산골짜기 등의 각지는 평소 동학당의 소굴이라고 일컫는 곳입니다. 이번 충청도의 소요 때에도 동학당을 응원하기 위해 상주 쪽에서 그곳으로 간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이 지방의 인민들은 동학당에 대하여 누구나 암암리에 경의를 표하며 동학당을 지목하여 동학군(東學君) 혹은 동학인(東學人)이라 칭하며 당(黨)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하는 바를 듣건대, 모두가 민씨(閔氏) 집안의 전횡에 분개하고 지방의 폐정을 탄식하지 않는 자가 없다고 합니다. 현재 대구에서도 경계를 매우 엄하게 하여 남자의 야간통행을 금하고 감영 소속의 병사는 매일 조련합니다. 4,5년 전 이 항구에 머물고 있는 일본 상인의 손을 거쳐 도쿄(東京) 오쿠라구미(大倉組)에서 구입한 600정의 소총으로 30칸 정도의 거리에 사방 1칸 정도의 표적을 세우고, 첫날에 여기에 명중시킨 병사 1명을 즉시 등용하여 선달(先達) 벼슬을 주어 다른 병사를 크게 고무시켰다고 합니다. 이 소총 중에 총의 점화구가 녹슬어 발화되지 않는 것은 화승총으로 개조한 것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또 칠곡(漆谷) 지방에는 근래 일종의 유언비어가 나돌아 대공황을 초래하였습니다. 지금 그 이유를 물었더니, 조선은 조만간에 러시아가 점령하게 될 것이니 인민이 아무리 일을 해도 그 보람이 없게 될 것이라 하여 실망과 낙담한 나머지 온 마을에 모조리 일하려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또 지난달(5월) 진주 지방에서도 인근 각지의 동학당이 봉기하여 매우 불온한 상태였지만, 얼마 되지 않아 진정되었습니다. 거괴인 백도홍(白道弘)을 비롯한 30여 명의 무리가 포박되었고 그 후 무사해졌다는 것입니다. 또 이 지역의 마산포(馬山浦)에서도 전날 이래 동학당이 봉기하였다는 풍설이 떠돌기도 했지만, 이 지방에서 일어난 것은 동학당이 아니라 농민이 소규모의 소요를 일으킨 것에 불과한 것으로 지금은 진정되었습니다. 1894년 6월 12일 (이는 부산영사로부터 받은 것으로 6월 13일 부산에 있는 도리우미(鳥海) 함장에게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