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安報) (58) 1894년 6월 12일 ○ 동학당의 정황 동도는 앞서 무장(茂長)으로부터 영광(靈光)으로 남하하였으므로 군산에 상륙한 초토사(招討使)의 경군(京軍)은 전주로부터 대대적으로 이를 추적하여 흥덕(興德) 지방으로 진군하였고 강화주방(江華駐防) 부대는 목포로 상륙하여 앞뒤에서 협격(挾擊)하여 이를 정벌하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적도(賊徒)는 바로 함평(咸平), 무안(務安)으로 나와 방향을 바꾸어 비어 있는 전주를 공격해 마침내 점령했습니다. 그 이후 별책을 통해 그 상황을 살펴보면, 5월 29일 모든 관군 세력은 빠르게 전주를 향해 6월 1일 군산에 상륙한 부대-인원은 현재 불과 3~4백 명이라고 합니다.-와 목포에서 진군한 부대-인원은 약 4백 명-를 합세해 대대적인 공격을 펼쳐 마침내 성 아래에 이르렀습니다. 그렇지만 적의 기세가 창궐하고 굳게 성을 지켜 경군이 빼앗지 못하고 물러나 청주 군사의 후원을 전품(電稟)했습니다. 그런데 충청감사는 옥천(沃川), 은진(恩津) 등이 요로를 굳게 지킨다고 하며 이 후원을 거절하였습니다. 이 공격은 관과 적의 사상자 수가 수백 명에 이르러 조금은 격전이었는데, 경군이 승리를 거둔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이어서 공주에 머물고 있던 순변사의 부대(천여 명)는 그 뒤 전주로 진군했다고 합니다. 또 오늘 마침내 관군이 전주를 수복했다는 전보가 정부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12일자 경성주재 야스하라(安原) 소좌 보고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