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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동학당의 상황 東學黨ノ狀況
일러두기

함대(艦隊) (58) 1894년 6월 본부(本府, 동래부)에서 함양(咸陽) 사이의 연로(沿路) 탐문기 一 4월 28일 동래(東萊)를 출발하여 김해(金海)에서 숙박, 29일 창원(昌原)에 도착함. 연도에는 풍문이 자자했으나 확신할 만한 것은 없었습니다. 진해(鎭海)에서 하루 투숙하고 다음 날 30일 진주(晉州)로 향했습니다. 이곳 영장(營將)은 1,000여 명의 민병을 모아 불의의 사태에 대비하고 동학도인 백도홍(白道弘)을 덕산(德山)- 지리산 경계에 있는 작은 지역명-에서 붙잡아 즉시 효수 경계하고 나머지 무리 수십 명은 감옥에 잡아 두었기 때문에 잠시 진정되었습니다. 이곳 목사(牧使)는 전염병으로 죽어 현재 상을 치르고 있습니다. 一 5월 1일 진주를 출발하여 산청(山淸)에서 투숙하고 2일 함양(咸陽)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서부터 서쪽으로는 길이 막혔다고 해서 상황을 상세히 탐문해 보니 전라도 운봉(雲峰)과의 접경에서 동학도가 통행인을 엄중히 감시하며 일일이 조사한 후에 보낸다고 하여 결국 더 갈 수가 없었습니다. 운봉 지방에서 온 사람에게서 탐문하였는데, 3월 17일 전라도 고부(古阜)에 민란이 일어나자 동학도들이 소요를 틈타 반란을 도모했고 고부에 사는 전녹두(田菉荳)라는 자가 우두머리가 되어 전주로 향했다고 합니다. 一 신임 전라감사는 혼자 경계에 이르러 남고산성(南固山城)에 머물면서 교대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날은 4월 27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동학도 수천 명이 전주감영의 서문으로 들이닥쳐 먼저 군기를 탈취하고 이어 성안을 점거하였는데, 세력이 강대하여 항적할 수 없었습니다. 교체된 전라감사는 남문을 열고 나와 남고산성에서 신임 전라감사와 교대한 후에 경성(京城)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一 3,4일은 정보를 탐문하기 위해 머물다가 5일에 출발하여 7일 진주에 도착하여 잤는데, 별로 시끄러운 기색은 없었습니다. 9일 돌아왔습니다. 이번에 지나온 영남의 각 지방은 대부분 평안하며 도처에서 보리를 거두고 모를 심는 광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는 부산영사로부터 받은 것으로 6월 13일 부산주재 도리우미(鳥海) 함장이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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