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보 (58) 1월 2일 ○ 좌수영항 쓰쿠바(筑波) 함장의 보고 지난해 12월 31일 오후 부산항을 출항해서 다음 날인 1월 1일 오전 좌수영에 입항했습니다. 좌수군 절도사 김철규(金澈圭)가 본함에 내방하였으므로 지난 30일 우리 육군 1개 중대가 부산에서 순천을 향해 출발한 일을 통보하고 또 순천 공격과 동학도 진압 방법 등을 협의하였습니다. 그 결과에 따라 오늘 2일 오전 좌수영으로부터 중군(中軍) 신홍(申) 및 중영장(中領將) 곽경환(郭景煥)이 조선군 100명을 지휘하여 바닷길로 하동(河東)을 향해 출발해 우리 육군 부대를 맞이했습니다. 또 내일 3일 중으로 영관(領宮) 이주회(李周會)-이풍영(李豊榮) 또는 남주(南洲)라고도 부른다.-가 조선군 600명을 지휘하여 육로로 순천가도 신성포(新城浦)를 향해 출발해서 오는 6일까지 우리 육군과 결합하여 순천성을 공격할 예정입니다. 현재 동학도의 수령은 순천성에 모여 12개 읍의 동학도를 모집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 순천성에서 좌수영 등으로 진격하는 상황에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一 종래 전라도 안의 53관(管) 가운데 50관은 동학도가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 3관인 좌수영, 나주 및 운봉(雲峯)은 동학도에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현재 동학도 명부에 이름을 올린 자는 백만여 명에 이를 것이므로 동학도의 수령들은 어찌 됐든 기타 하등(下等)의 우민(愚民)에 대해 가능한 한 귀순하여 되돌리는 방법을 마련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문명국의 사례에 따라 지난 1월 1일 좌수영 절도사는 감옥에 있던 동학도 20명 가운데 3명의 부인(婦人)에게 선서를 시킨 다음 풀어 주고 참죄(斬罪)를 면해 주었습니다. 특히 일본의 조선에 대한 후의(厚意)와 동학도에 대한 우리 쓰쿠바함의 인애(仁愛)의 주지(主旨)를 설명한 뒤 동학도 안으로 쫓아 보냈습니다. 一 본함은 다가오는 6일경 순천을 공격한 결과를 확인하고 죽림포(竹林浦)를 거쳐 부산으로 회항할 전망입니다. 무엇보다 죽림포에는 측량원 외에 대위 한 명, 소위 두 명, 하사 이하 20여 명을 남겨 두겠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보고드립니다. 1895년 1월 3일 좌수영항(左水營港) 선임관(先任官) 쓰쿠바(筑波) 함장 구로오카 다테와키(黑岡帶刀) 대본영(大本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