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지 보고 1. 1894년 12월 30일 부산 병참지를 출발해 김해, 창원, 진해를 거쳐 3읍곡(邑谷)에 이르는 동안 보고할 만한 것은 없습니다. 2. 1월 3일 곤양(昆陽)에 도착해 여기서 처음으로 동도의 정황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약 7백 명의 동학도가 섬호강(蟾湖江) 우측에 접해 있는 하동부의 정 서편에 모여 금방이라도 하동부로 침입하려고 하는 상황입니다. 또 이 강 상류는 구례군(求禮縣)에, 하류는 이 강의 입구 고포(高浦)에 이르는 사이 여전히 수많은 동학도가 흩어져 있었습니다. 하동부는 조선군 약 천 명을 주둔시켜 방어책을 강구하며 우리 군이 올 것을 학수고대하고 있다고 합니다. 3. 같은 달(1월) 4일 오후 하동부에 도착해 부사(府使)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에게 그 지역(하동부)의 상황을 물어보니, 약 20일 전부터 조선군 약 4백 명이 당부(當府, 하동부)에 모여 동학도의 내습을 막고 있는데 아직 전투가 벌어지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먼저 공격할 용기가 없어 그저 시간을 보내던 중 일본군, 즉 귀 부대가 당부로 향한다는 것을 듣고 갑자기 기세를 얻어 지난 3일 섬호강의 하동 방면 상류 4리(里)에서 건너편으로 가서 지금은 산과 민가를 불태우고 이 강의 입구로 향하며 동학도 소탕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4. 같은 달(1월) 5일 후지사카(藤坂) 소위가 이끄는 1소대에 조선군 70명-우리 군을 맞이한다며 하동부에 온 좌수영 부대-을 부속시켜 섬호강 우측 지역의 적을 강 입구 고포 쪽에서 격퇴시키고 본관은 2소대를 이끌고 섬거역(蟾居驛)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저항하는 무리가 없어 오후에 역에 도착했습니다. 후지사카 소위는 고포 부근에서 2~3명의 동학도와 마주쳤으나 그들이 재빨리 도망갔으므로 총 한 발도 쏘지 못하고 섬거역으로 돌아왔습니다. 도중의 민간 촌락들은 모두 조선군이 불태웠습니다.-방화 건에 관해서는 해당 조선군 장관에게 엄히 충고하여 앞으로 방화하는 자가 있다면 참수에 처할 것이라는 명령을 내리게 하였습니다.- 섬거역에 도착하자 조선병은 근처 마을의 인민을 소집해서 일일이 심문하고 다음과 같이 처형하게 했습니다. 一 도접주(接主) 김이갑(金以甲)[참수(斬首)] 一 27명[포살(砲殺)] 이 밖에 포박된 자가 수십 명 있었으나, 죄의 유무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5. 같은 달 6일 조선군과 함께 섬거역을 출발해 광양으로 향했습니다. 도중에 배양거(裵陽居)를 지날 때 그 마을 사람들이 동학도 제2의 두목인 도집강(都執綱) 정홍섭(丁洪燮)을 포박했다며 그를 길거리로 끌고 왔습니다. 그런데 타상(打創)과 도상(刀創) 등을 입어 거의 절명 상태에 있어 군의가 보살폈으나 방도가 없어 조선 법에 따라 참수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광양부(光陽府)에 도착했는데, 저 동학도가 우리 군이 온다는 것을 듣고 이미 한력(韓曆, 음력) 7일에 해산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민(府民)은 관리와 협력해 잔당을 붙잡아 다음과 같이 처형했습니다. 一 영호대접주(嶺湖大接主) 금구(金溝) 김인배(金仁培) 효수(梟首) 一 영호수접주(嶺湖首接主) 순천(順天) 유하덕(劉夏德) 효수 一 사곡접주(沙谷接主) 한군협(韓君夾) 총살 一 옥룡접주(玉龍接主) 서윤약(徐允若) 형제 총살 一 인덕접주(仁德接主) 박치서(朴治西) 총살 一 사곡접주(沙谷接主) 한진유(韓辰有) 총살 一 광양순천수접주(光陽順天首接主) 김학식(金鶴植) 총살 一 봉강접주(鳳岡接主) 박흥서(朴興西) 총살 一 인덕접주(仁德接主) 성석하(成石河) 총살 一 월포접주(月浦接主) 김명숙(金明淑) 총살 一 순천서면접주(順天西面接主) 김가(金哥) 총살 一 우장도당(牛藏徒黨) 이차겸(李且兼) 총살 一 순천서면(順天西面) 황재숙(黃在淑) 총살 이 밖에 78명 총살 6. 7일 좌수영군과 함께 광양을 출발해 순천으로 향했으나 한 명도 대적하는 자가 없어 오후에는 순천부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 모인 동학도 역시 광양의 동학도와 같은 날 해산했고 그 대부분은 장흥 및 흥양(興陽) 지방으로 퇴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곳의 부민도 역시 관리와 협력해 잔당을 붙잡아 다음과 같이 처형했습니다. 一 영호도집강(嶺湖都執綱) 쌍암면(雙岩面) 정우형(鄭虞炯) 一 성찰(省察) 권병택(權炳宅) 이상 총살 一 사면접주(四面接主) 김영구(金永九) 一 별량면접주(別良面接主) 김영우(金永友) 一 월등면접주(月登面接主) 남정일(南正日) 이상 효수(梟首)이름을 알 수 없는 자로는 타살(打殺) 94명, 수감자[囚徒] 수십 명 7. 당 중대는 현재 이곳에 체류하며 오로지 동학도의 소재를 수색하는 중입니다. 8. 제19대대는 아직 이 지방에 오지 않았고, 그 소재도 역시 불분명합니다. 9. 양식, 한전(韓錢), 인부 등의 상황은 대체로 좋습니다. 10. 환자의 상황은 고용한 의사가 보고할 것이므로 생략합니다. 이상 보고드립니다. 1895년 1월 8일 전라도 순천부에서 중대장 육군 보병 대위 스즈키 야스타미(鈴木安民) 대대장 육군 보병 소좌 이마바시 도모카쓰(今橋知勝) 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