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보 (58) 3월 31일 ○ 인천 다카이 병참감의 전보 지난달 30일 오전 8시 해주(海州) 서쪽 강령(康翎)과 옹진(甕津) 두 곳에 모여 있는 황해도의 잔당을 해안으로 압박할 목적으로 예비대(豫備隊) 일부는 송화(松禾)와 장연(長淵)에서, 수부(首部)는 문화(文化)와 신천(信川)에서, 사이토(齋藤) 소위는 재령(載寧)과 남창(南倉)ㆍ해주에서 공격을 위해 수비지역을 출발한다는 내용을 담은 구마가야(熊谷) 중좌의 보고가 있었습니다. 오늘 31일 구마가야 중좌의 재보(再報)에 따르면, 사이토 소위는 명령한 진로를 취하여 오늘 오전 10시 ‘쇼쿠가무라’를 거쳐 약 5~6정(丁)을 전진했는데 흩어져 있는 동학도의 사격을 받아 1분대를 우측으로 돌게 하고 본대는 본도를 나아갔습니다. 적은 점차 퇴각하여 5개소로 나뉘어 높은 산으로 올라가 방어했습니다. 이곳은 험준하여 방어하기에 적합했기 때문에 공격해도 완고하게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다시 1분대를 좌측의 산으로 돌아 공격하게 하였더니 점차 퇴각해 우측의 가장 높은 산에서 방어했습니다. 이에 완전히 적의 진지를 점령해 마침내 격퇴하자 적은 흩어져 도주했습니다. 우리 진지와 적의 마지막 진지 계곡에 ‘묘운지’라는 절이 있었습니다. 적의 근거지인 이곳에는 미곡 약 2백 석 정도가 있었으나 운반이 곤란했기 때문에 모두 태워 버렸습니다. 적은 약 1,500명 정도로 사상자는 분명하지 않지만 약 40명이었다고 합니다. 단, 송화, 장연 및 문화, 신천으로부터 진군한 부대는 아직 보고가 없습니다. 인천 다카이 병참감 가와카미(川上) 병참총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