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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폭민동학당 暴民東學黨
일러두기

제3회 보고 10일 오늘 낙안군(樂安郡)을 출발해 파음역(波音驛)으로 향하던 도중 조성원(鳥城院)을 지나려 하던 때 동학도 20여 명이 버젓이 양민을 위장하고 나와 우리 군을 맞이하였습니다. 그 거동에 매우 수상한 자가 있어 붙잡아 조사했더니 과연 동학도의 악계(惡計)였습니다. 따라서 조선군으로 하여금 바로 처형하게 하였는데 그 사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원기(吳元基) 효수(梟首) 외 8명 총살 나아가 파음역(波音驛)에 도착해 사영(舍營)했습니다.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주회(李周會)-李豊榮의 別名-가 다음의 정보를 전달했습니다. 일본군 및 경군(京軍)의 일부는 이미 지난 28일 이후 장흥으로 향해 장흥부의 북쪽 약 2리 지점에서 동학도와 싸워 이를 무찔러 시체가 산을 이루었습니다. 11일 오늘 장흥부에 도착하려고 해서 아침 일찍 파음역(波音驛)을 출발해 보성군에서 휴게하던 중 그 부근에 동학도가 매우 많다는 것을 전해 듣고 마침내 보성군에서 사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오후에 군 남쪽 약 2리 지점의 오류촌(梧柳村)에 동도의 거괴(巨魁) 이하 20여 명이 숨어 있다는 것을 듣고 곧바로 기노시타(木下) 소위를 보냈으나 그 무리는 이미 도망을 가고 남아 있지 않아 마을에서 혐의자 8명을 포박했습니다. 그 가운데 5명은 무죄이므로 풀어 주고 다른 3명은 거괴의 아버지이므로 잠시 보성군에 투옥했습니다. 12일 이날은 다음 정보를 얻었습니다. 지난번 장흥 부근의 전투에서 패한 동학도의 많은 수가 보성군 소관의 각처에 숨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대는 당분간 이곳에 체재하며 잔당을 청소하기로 결정하고 오로지 사방을 수색하게 했습니다. 13일 이날은 다음과 같은 정보를 얻었습니다. 보성군 남쪽 약 1리 반 떨어진 촌락인 부춘동(富春洞)에 동도 50여 명이, 또 북쪽 약 1리 떨어진 대가촌(代加村)에 동학도 백여 명이 모여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후지사카(藤坂) 소위를 대가촌에, 쇼노(庄野) 특무조장(特務曹長)을 부춘동에 약간의 병력을 붙여 보내 공격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대가촌의 적은 이미 도망치고 없었습니다. 부춘동도 역시 모여 있는 자가 없고 7명의 동도와 7명의 혐의자를 포박했습니다. ○ 오늘 밤 다시 다음의 정보를 얻었습니다. 보성군의 동쪽 2리 남짓 떨어진 해창(海倉) 산속에 동도 백 명이 모여 있다는 것입니다. 14일 어젯밤 얻은 정보에 따라 오늘 중대-4분대 잔류-를 이끌고 해창산으로 향했습니다. 동도는 이미 우리 군이 향하는 것을 알고 어젯밤 사방으로 흩어지고 없었습니다. 불과 11명의 남은 무리를 포박했습니다. 그리고 산 위에 바로 공사를 마치려 하는 가옥 4채를 발견했는데 대체로 적도가 모일 때 사용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뒷날을 염려해 이것들을 모두 불태워 버렸습니다. 15일 오늘 보성군의 사방 1리에서 3리의 지점에 하사(下士) 척후 6조(組)를 파견하여 모두 51명의 동도를 포박하였습니다. 현재 이쪽 방면의 정황 지난 13일 장흥을 향해 파견된 척후와 능주(綾州)로부터 온 제2중대의 척후 및 구스노(楠野) 소위의 서한 등에 따르면, 제19대대 제1중대, 제2중대의 지대 및 제18대대 시라키(白木) 중위가 이끄는 교도중대는 연합하여 3면에서 남쪽 방향으로 진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제2중대는 오늘 영암(靈巖)을 향해 능주를 출발하여 강진, 해남의 남은 무리를 공격할 계획입니다. 그런데 구스노 소위로부터 받은 편지에 따르면, 이 지방은 점차 진정되는 상황입니다. 제18대대의 교도중대는 죽천동(竹川洞) 부근에서 3~4백 명의 적과 조우하여 이를 격파했다고 합니다. 경성의 조선병 8백 명이 우리 부대의 뒤를 쫓아 광양으로부터 순천, 낙안을 거쳐 보성군에 옵니다. 이미 오늘 능주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우리 중대는 장흥, 강진을 거쳐 해남 지방으로 향하려 하였지만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그 지방은 점차 진정된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보성군의 군수 이하 각 관리에 관해 의심되는 점이 적지 않고 기타 근처 마을의 남은 무리를 완전히 청소하지 못했으므로 아직 당분간 이곳에 체재하며 충분히 정찰할 생각입니다. 현재 각지의 정황으로부터 살펴보건대 앞으로 그들과 전투할 기회는 전혀 없을 것입니다.  이상 보고드립니다. 1895년 1월 15일 적음 전라도 보성군에서 제4중대장 스즈키(鈴木) 대위 대대장 이마바시(今橋) 소좌 귀하 상석 해군 참모관 전보 [1월 27일 오후 6시 10분 인천발같은 날 오후 8시 20분 부산발같은 달 28일 오전 0시 20분 착] 제19대대장으로부터 동당(東黨) 2~3천 명이 해남 지방으로부터 진도, 제주도에 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이 보고는 지난 19일 나주에서 보낸 것입니다. 오늘까지는 부산에서 파견한 중대와 연락해 전라도 서남부의 동학당을 격퇴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제주도의 일은 쓰쿠바함(筑波艦) 및 소코호(操江號) 함장에게 통보한 것을 이즈노(伊津野) 소좌에게 통보해 두었습니다. 인천 이마바시 병참사령관 가와카미 병참총감 상석 해군 참모관 전보 [1월 28일 오후 4시 32분 인천발같은 날 오후 5시 5분 부산발같은 날 오후 8시 40분 착] 부산의 이즈노(伊津野) 소좌로부터 방금 다음의 통보를 받았습니다. 부산으로부터 파견된 스즈키(鈴木) 대위가 지난 10일 파청역(波青駅)에서 한인으로부터 들은 바에 따르면, 지난 8일 일본군 및 경성 조선병의 일부는 장흥 부근에서 동학도를 격파하여 적의 시신이 산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 장흥에 파견된 척후 및 쿠스노-楠野로 보임.- 소위의 서한에 따르면, 제19대대의 제1, 제2중대의 지대(枝隊) 및 제18대대 시라키(白木) 중위가 이끄는 교도중대는 연합해서 3면으로부터 남방으로 나아가고 제2중대는 15일 능주(綾州)를 출발해 강진, 해남의 남은 적을 공격하려고 합니다. ○ 교도중대는 죽천동(竹川洞) 부근에서 동학도 4백 명을 격파했습니다. ○ 경성의 한병(漢兵) 8백 명은 순천, 낙안, 보성을 거쳐 능주로 향했다고 합니다. 인천 이마바시 병참사령관 가와카미 병참총감 상석 해군 참모관 전보 [1월 29일 오전 11시 15분 인천발같은 날 오전 11시 55분 부산발같은 날 오후 1시 35분 착] 지난 19일발 후쿠토미(福富) 대위의 필기보고에 따르면, 13일 가흥(可興)으로부터 파견한 정찰대는 17일 장호원(長湖院)과 음성(陰城) 사이에서 제18대대 이시모리(石森) 중대의 지대와 만났습니다. 때마침 적도 수백 명이 내습해 오므로 같이 협력해서 이를 맞아 싸워 적도 수십 명을 죽이고 우리 병사는 1명이 부상당했습니다. 적도는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습니다. 인천 이마바시 병참사령관 가와카미 병참총감 상석 해군 참모관 전보 [1월 30일 오후 0시 45분 어은동(漁隠洞)발같은 날 오후 0시 50분 부산발같은 날 오후 3시 30분 착] 동학당에 관한 보고 1. 지난 20일 과거 봉산(鳳山)에서 파견된 야마나카(山中) 소위의 부대가 송화(松禾)-이곳으로부터 서남쪽으로 8리-에서 동학당 5백여 명과 조우해 1시간여 동안 고전하여 적 2명을 부상시키고 물리쳤습니다. 노획품은 총 50, 창 5자루, 깃발 3개, 기타 서류입니다. 2. 지난 30일 은율(殷栗)에서 동학도의 수령급 4명을 포박하고 화약 520근(斤), 총 250정 및 창과 검, 서류를 노획했습니다. 3. 현재 황해도의 많은 동학당이 장연(長淵)에 집합하여 일부는 재령(載寗), 봉산 사이에 있는 은파(銀波)에 집합해 있는 것 같습니다. 해주 방면은 그 지역을 출장 중인 나카야마(中山) 중위로부터 현재 조용해졌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4. 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조치했습니다.야마나카(山中) 소위에게는 이곳 수비대 가운데에서 2개 분대를 추가해 27일 이곳을 출발해 은율과 송화를 거쳐 장연으로, 나카야마 중위는 해주로부터 나아가 장연을 향하게 해 협격해서 강경하게 토벌하여 재연(再燃)의 우려가 없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 은파 방면은 먼저 조선군이 담당하게 하고 확실한 정보를 얻은 뒤 토벌에 착수할 생각입니다. ○ 어느 부대라도 정찰과 경계를 확실하게 해 병사들이 헛된 수고를 하지 않도록 하라고 훈령했습니다. 5. 은율의 동학당 수령 이하 현재 이곳에서 구류되어 심사 중인 자 가운데 그 결과에 따라 현관(縣官)에게 보낼지, 이노우에(井上) 공사에게 호송할지를 결정할 것입니다. 어은동 구마가야(熊谷) 병참사령관 가와카미 병참총감 상석 해군 참모관 전보 [2월 7일 오후 8시 35분 인천발같은 날 오후 9시 부산발같은 날 오후 11시 30분 착] 봉산(鳳山) 부근에 아직 동학도가 산재해 있다는 것을 듣고 어제 6일 동 사령부로부터 두 개의 길로 척후를 파견하였는데 모두 같은 곳에서 만나 적 7~8명을 죽이고 접주(接主) 1명, 당의 무리 6명을 포획해 돌아왔습니다. 포로는 현재 조사 중이라는 내용의 봉산병참부로부터 보고가 있었습니다. 인천 이마바시 병참사령관 가와카미 병참총감 상석 해군 참모관 전보 [2월 13일 오전 10시 20분 부산발같은 날 오전 11시 57분 착] 전라도 남부에 파견된 스즈키(鈴木) 대위로부터 지난 5일 보성군(寶城郡)발 다음의 보고가 있었습니다. 동학도가 진정되었으므로 중대는 내일 6일 부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르려 합니다. 부산 이즈노(伊津野) 병참사령관 가와카미 병참총감 상석 해군 참모관 전보 [2월 28일 오전 11시 55분 인천발같은 날 오후 4시 부산발3월 1일 오후 5시 50분 착] 충청도는 평온해져 현재 고려할 필요가 없으므로 야마무라(山村) 대위가 이끄는 여러 부대는 각 임지로 돌아가게 하고 동학당의 접주 민센코(閔センコウ)는 공사관으로 호송하게 했습니다. ○ 후비보병 제19대대는 오늘 용산으로 돌아갔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예산현(禮山縣)에서 중국인 14명을 포박해 공사관으로 호송하였습니다. 이 중국인은 상인이라고 칭하며 각 시장을 순회하여 중국 군함 18척이 인천으로 공격해 온다든가 왜군은 크게 패하고 조만간 중국의 대군이 조선으로 온다는 등의 소문을 퍼트려 조선인을 선동한 자들입니다. 인천 이마바시 병참감 사무취급 가와카미 병참총감 상석 해군 참모관 전보 [3월 12일 오후 6시 20분 인천발같은 날 오후 6시 40분 부산발같은 날 오후 10시 착] 지난 7일의 보고에 따르면, 3일 황주(黃州)로부터 동학도 정찰을 위해 파견된 조선군 130명은 봉산(鳳山)의 조선군 150명과 협력해 4일 은파(銀波) 부근의 적 2백여 명을 격퇴하고 무기와 미곡을 노획하였습니다. 현재 동학도의 소굴은 구월산 및 은파의 남쪽 약 7리에 있는 조지산(チヨウジサン)일 것이라고 합니다. ○ 지난 11일의 보고에 따르면, 안악(安岳) 및 장연(長連)으로부터 어은동(漁隱洞)에 도착한 병졸 및 관리의 말을 대조하면 구월산에 모인 동학도는 1천 명 내외일 것입니다. 좀 더 정황을 확인한 다음 적절한 조치를 할 것이라는 내용의 구마가야(熊谷) 중좌로부터 보고가 있었습니다. 인천 다카이(高井) 병참감 가와카미 병참총감 상석 해군 참모관 전보 [3월 25일 오후 11시 10분 어은동(漁隠洞)발같은 달 26일 오전 0시 10분 부산발같은 달 26일 오전 1시 40분 착] 장연(長連)에 있는 야마무라(山村) 대위로부터 다음의 보고를 받았습니다. 지난 23일 밤 행군하고 24일 오전 5시 구월산 ‘겟세이’로 진입했는데, 약간의 총과 창을 휴대한 적과 변장한 적 여러 명을 포획하고 백미 30석을 노획하였습니다. 어은동 구마가야(熊谷) 병참사령관 가와카미 병참총감 상석 해군 참모관 전보 [3월 26일 오후 10시 15분 어은동(漁隠洞)발같은 날 오후 11시 15분 부산발같은 날 오후 11시 50분 착] 방금 은파(銀波)에 있는 사이토(齋藤) 소위로부터 다음의 보고를 받았습니다. 오늘 오전 8시 반 동학당 약 천 명이 공격해 왔습니다. 따라서 즉각 격퇴하고 이를 추격했는데, 여러 방향으로 흩어져 패주(敗走)했습니다. 휴전은 오전 10시 반, 적의 사상자는 40~50명, 아군은 무사합니다. 내일은 재령(載寧)으로 진군할 계획입니다. 어은동 구마가야(熊谷) 병참사령관 가와카미 병참총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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