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 아룁니다. 음양의 도와 선악의 기미는 상호 소멸하고 자라나 한순간도 간격이 있을 수 없으니, 성인이 천지의 조화에 참여하여 만물의 화육(化育)을 돕는 것이 어찌 다른 방도가 있겠습니까. 또한 이러한 이치에 순응하여 거스르는 바가 없게 할 뿐입니다. 옛날 흥성했던 시절에는 정치와 교화가 아름답고 밝아서 백성의 삶이 태평성대를 이루었으나 세도(世道)의 수준이 점차 낮아져서 세상이 어지러울 때가 많고 다스려지는 때가 적었던 것은, 대개 선비가 학문을 익히지 않아 도가 밝혀지지 못한 데에서 말미암은 것입니다. 오직 우리 왕조는 문(文)을 숭상하는 정치를 하여 훌륭하고 아름다운 법규가 지극하고 극진하였습니다. 전하께서 요순(堯舜)과 같은 자질로 조종(祖宗)의 통서(統緖)를 이으셨으니, 한번 힘써 도모하고 분명하게 결단하신다면 대대적인 경장(更張)을 행하지 않더라도 또한 지극한 도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이 삼가 지난달 24일에 내리신 유현(儒賢)을 돈유(敦諭)하고 선비들을 권면하는 성상의 전교를 보았는데, 정성스럽고 간절함이 보통의 격식을 훨씬 벗어난 것이어서 신처럼 용렬하고 못난 사람도 오히려 기쁜 마음을 가누지 못했습니다. 성상의 말씀이 한번 나오자 조정과 민간에서도 들썩하여 고무되었으니, 사문(斯文)을 지키고 유술(儒術)을 장려함이 이미 충분하고도 컸습니다. 아! 근래에 동학(東學)과 서교(西敎)가 여기저기 치성(熾盛)하여 양주(楊朱)ㆍ묵적(墨翟)과 노자(老子)ㆍ불가(佛家)가 백성에게 해악을 끼친 정도일 뿐만이 아닌데, 이 세상에 맹자(孟子)나 한유(韓愈) 같은 분이 없으니 매우 근심스럽고 두렵습니다. 저들이 말하는 것은 학문이나 교리로 논할 것도 못되지만 이익으로 서로를 불러 패거리를 비호하고 근거 없는 견해를 펼친다는 점에서 동학이나 서교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번에 괴상한 무리가 방자하게 아무 거리낌 없이 대궐문을 두드렸으니,혈기 있는 사람이면 누군들 분통을 터뜨리지 않겠습니까. 저들 무리가 믿는 것은 불러 모은 기들의 무리와 현혹하는 자기들의 재주입니다. 마치 어린 자식이 미치광이 병에 걸려 엎어지고 뒹굴면서 패악질하는 것과 같으니, 백성의 부모로서 그들을 제지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또한 푸른 하늘의 밝은 태양이 환하게 비추고 있으니, 음흉하고 못된 망양(魍魎) 같은 무리는 절로 사라지고 달아날 것입니다. 속히 형조에게 형장(刑杖)을 치면서 신문(訊問)하여 실정을 알아내게 하되, 괴수 중에 문자를 할 줄 알아 주장한 자에 대해서는 즉시 서울과 지방에 신칙(申飭)하고 독촉하여 낱낱이 수색해 잡아들여서 의리로 타이르고 법률로 꾸짖어 스스로 새사람이 되어 귀화할 수 있게 하소서. 그리고 가장 심하게 중독되어 줄곧 뉘우치지 않고 반드시 다른 사람까지 끌어들여 물들이는 부류의 경우에 대해서만 국법으로 엄히 징계한다면 남은 무리가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틀림없이 저절로 흩어져 평범한 백성이 될 것입니다. 신은 삼가 가만히 생각건대, 최근에 바른 학문이 무너지고 선비의 추향(趨向)이 단정하지 못하여 그릇된 주장에 그대로 휩쓸려 버리는 분위기가 이에 이르러 극에 달했으니, 비단 식견 있는 자들만 근심할 뿐 아니라 신처럼 어리석은 사람도 스스로 가슴을 부여잡으며 한탄해 마지않고 있습니다. 근본을 단정하게 하고 근원을 맑게 하는 것은 오로지 우리 전하께서 몸으로 실천하고 안으로 성찰하여 마음을 바르게 하고 덕을 닦는 데에 달려 있으니, 몸소 솔선하여 이끌어서 유학의 도를 숭상하고 학교를 부흥시키는 것이 오늘날의 급선무입니다. 선정(先正)이 남겨 준 향기를 보존하고 사림(士林)이 돌아가 의지할 곳을 얻는 것은 또한 서원(書院)을 다시 설치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서원의 역할이 그저 현자를 높이고 문을 숭상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군자는 서원에서 우러러보며 사모하고 소인은 서원을 통해 선한 본성을 유지하니, 열성조(列聖朝)에서 인재를 기르고 백성을 교화하신 것도 반드시 서원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선비가 학업을 익히는 장소로 서울에는 성균관과 사학(四學)이 있고, 지방에는 향교가 있어서 서원이 있고 없고가 꼭 문제 되는 것은 아니지만, 깊고 궁벽한 산골에서 곤궁함을 굳게 지키며 독서하는 사람이 이곳에서 글을 읽고 문장을 익힌다면 분명 시끌벅적한 도회지보다 나은 점이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위태로운 시기에 매우 한가롭고 동떨어진 말인 것 같지만 근본을 다스리지 않고 말단을 다스릴 수 있는 경우는 없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유사(有司)에게 분부하여 열성조의 사액서원(賜額書院)을 다시 설치하도록 하셔서 많은 사람의 기대에 부응해 주소서. 조정도 초야도 깨끗하고 밝아져서 교화가 성대하게 일어난다면 비록 온갖 못된 무리가 있다 하더라도 절로 일어났다가 절로 소멸할 것이니 근심할 거리도 못될 것입니다. 어리석은 신이 또한 생각건대, 자주 경연을 열어 의리와 이익의 분간을 강구하고 정성과 예의를 힘써 다하여 반드시 유현(儒賢)을 맞아들여서 사도(師道)를 높이신다면 나라 안팎의 모든 사람이 존경하고 본받아 사문을 떠받치고 원기를 붙들어 세워 상도(常道)에서 벗어나 제멋대로 행하는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양기가 자라고 음기가 소멸할 일대 기회가 아니겠습니까. 신은 타고난 자질이 어둡고 부족한 데다 평소 학업도 제대로 닦지 못해서 스스로 기꺼이 포기하고 있었는데, 요행히 과거에 급제하여 삼사(三司)의 직책을 두루 역임하였습니다. 그러나 계도하고 보좌하며 진언(進言)하고 권간(勸諫)하는 직분에 아무런 공효가 없으니 황송하고 두려운 마음이 오래될수록 더욱 깊어지기만 합니다. 사문을 위해 한번 죽는 것도 피하지 않을 터인데 하물며 나라의 안위가 걸린 문제는 더욱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천성으로 타고난 충심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여 이에 감히 숭엄하신 성상께 번거롭게 아룁니다. 삼가 바라건대 명철하신 성상께서는 속히 우레와 같은 위엄을 내려 여론의 울분을 시원하게 풀어 주시고 풍성(風聲)과 교화를 일으키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