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 아룁니다. 신은 타고난 본성과 부여받은 기질이 오활하고 엉성하며 어둡고 잔약하여 모든 것이 남만 못하기에 향당(鄕黨)에 이미 알려진 것이 없고 관료의 대열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을 감수하여 스스로 분수에 편안히 여겼습니다. 그런데 외람되게도 성상의 은총을 입어 삼사(三司)를 두루 역임한 것이 지금 여러 해 되었습니다. 그러나 고문(顧問)과 언책(言責)에 아무런 보답도 공효(功效)도 없이 한갓 그 사이에서 굽신거리고 뒤따르며 외람되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하물며 또한 군부(君父)는 신자(臣子)에 대해 대개 모든 것을 깊이 알고 있을 뿐만이 아닌 데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뜻밖에도 4월 30일에 특지(特旨)를 내려 신을 주차일본참무관(駐劄日本參務官)으로 차임(差任)하셨습니다. 신은 황송하고 두려워 며칠이 지나도록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대열을 따라 공무를 수행하기만 하면 되는 한가한 관청의 중요하지 않은 직책도 일찍이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여 한 걸음 물러나 있었는데, 이웃 나라와 우호를 맺는 외교에 있어 조약을 결정하는 중대한 일과 장정(章程)을 마련하는 다양한 일을 어떻게 받들어 감당할 것이며 일을 그르칠 걱정이 없겠습니까. 비록 사명(使命)이 지극히 중대하고 또 엄하지만 즉시 부르짖어 외람되이 성가시게 말씀을 올려서 기필코 변통이 되게 하는 것이 마땅하니, 그렇게 되면 인재를 밝게 알아보는 전하의 식견에 마침내 하자가 없을 수 있고, 신의 못난 자질도 분수에 편안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신은 삼가 어리석고 모자란 마음과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정성에 그만둘 수 없는 점이 있습니다. 지난 병자년(1876, 고종13)에 수호조약을 맺은 이후로 공론이 갈리어 개화파가 표방하여 세운 구호가 완전히 굳어졌으니, 산림에 은거하여 몸가짐을 단속하고 독서하는 선비가 옛 견해를 확고하게 지켜서 의기를 높이고 의론을 준열하게 하는 것은 참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형세이니 어찌하겠습니까. 그러나 국정을 맡은 신하들은 마땅히 두 배로 정성을 쏟아 다스려 나갈 길을 논하여 안으로 제도를 정비하고 밖으로 외세에 대응할 방도를 도모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오직 당장 편안하기를 구하고 임시로 둘러맞춰 모면하는 것을 일종의 규모로 삼아 다른 사람에게 핑계를 대고 책임을 떠넘기니, 외교는 어그러지고 사무는 무너졌습니다. 이에 한갓 신기하고 보기 좋은 물건과 편리하고 쓸모 있는 기구를 가지고 위로는 총명하신 임금을 현혹하고 아래로는 나라 예산을 쓸데없이 써 버리는 일이 한두 건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큰 문제가 아닙니다. 가장 큰 문제는 스스로를 업신여기고 스스로를 훼손하여 점점 고질이 되어서, 끝내는 수습할 수도 없는 창피하고 망측한 지경에 이르는 것입니다. 신이 한밤중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오싹하니 두려워하다가는 가슴을 치고 벽을 돌며 탄식해 마지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신은 한번 다른 나라의 도회지로 가서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보잘것없는 식견으로나마 그 나라의 부강함은 어떤 일 때문이며 현혹하는 것은 어떤 기술인가를 나름대로 헤아려 본 다음에 마침내 사실적인 내용과 자세한 사항을 가지고 돌아와 우리 전하께 아뢰리라 기약하였으니 그렇게 하면 거의 자신을 닦고 남을 응대하는 도리에 도움이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아! 저 일본 군대가 틈을 엿보아 무기를 가지고 느닷없이 도성을 쳐들어와서 심지어 성첩(城堞)을 부수고 드나들며 봉수대를 점거하고 길을 막아서서 마치 사람이 없는 것처럼 보아 아무 거리낌이 없으니, 저들이 우리나라에 어려움이 있는 상황을 틈타 위협하기를 이처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찌 만국공법(萬國公法)에서 나온 것이며 조약에 기재된 내용이겠습니까. 우리나라를 구원하겠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우리나라를 위협하는 것이고, 우리나라를 거짓으로 높이는 척하지만 우리를 고립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지금 갑자기 ‘자주국가냐, 아니냐.’로 마치 따져 묻듯 하니, 이미 수호조약에서 정한 규정이라 자세히 알고 익숙히 들은 사실입니다. 그런 만큼 이것은 의도적으로 정치에 간섭할 구실을 열어 이간질을 행하려는 것입니다. 끝내 감히 5조의 경장설(更張說)을 들어 기한을 정해 위협하고 독촉하니 신이 천고의 세월을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참으로 처음 있고 처음 듣는 변고이며 치욕입니다. 국경을 같이하는 이웃 나라라면 혹 정치를 잘하도록 꾸짖을 수도 있고 혹 침범하여 공격할 수도 있지만, 속임수로 군사를 이끌고 들어와 정치를 간섭하고 점차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어서 모조리 통제를 받게 하고 나서야 그만두려고 하니, 온 나라의 신민(臣民)이 이 소식을 들은 이후로 살려는 기운은 없고 죽으려는 마음만 있습니다. 아! 이렇게 된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서울에서는 법망이 해이해지고 지방에서는 탐학이 자행되어 점차 거침없이 그대로 이런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척연히 경계하고 맹렬히 반성하여 더욱 애통한 마음으로 허물을 자신에게 돌리는 윤음(綸音)을 내리신 다음에 크게 경장하고 크게 징계하여 고치는 것은 인색함이 없게 하고 시행하는 것은 공효가 있게 하시되, 능히 조종(祖宗)의 성헌(成憲)을 준행하소서. 그리하신다면 비단 팔도의 온 백성이 손뼉을 치며 기뻐할 뿐만 아니라 각국에서도 공경하고 두려워할 것입니다. 옛날의 성스럽고 명철한 임금은 종종 나무꾼에게도 묻고나무꾼에게도 묻고 시중드는 사람의 잠언(箴言)도 들어서 지극한 정치의 은택을 이루었으니, 이 또한 이웃 나라의 입장으로 서로 권면하는 도리에 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저 일본이 만약 단단히 미혹되고 집요하여 반드시 우리에게 나아가 질정받게 하고 우리 실정에 맞지도 않는 것을 따라 하게 한다면 이것은 우리를 노예로 만들고 죄수로 만들려는 계책입니다. 남에게 자주를 권하면서 저들은 도리어 주인 행세를 하려고 하니 어쩌면 그리도 이치에 닿지 않는 술책이란 말입니까. 즉시 외무아문(外務衙門)의 대신에게 명하여 의리에 근거해 질책하여 거부하게 하신다면, 교섭하고 있는 여러 나라가 참으로 저 일본을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 하수인과 앞잡이로 만들 양이면 그만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맹세를 어기고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성토와 문책이 일본에 끊이지 않고 계속 몰려들 것입니다. 오직 우리 전하께서 신민(臣民)과 맹세하여 무기를 수선하고 미리 준비하여 막으신다면 혈기 있는 사람치고 어느 누가 위험을 무릅쓰고 화염 가득한 전장으로 달려가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저들은 불과 한두 번의 싸움으로 반드시 패하여 달아날 것입니다. 승리를 보장하는 사람은 군사의 수가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고 노력하냐 안일하냐에 두며, 무기가 예리하고 둔함에 관계하지 않고 용맹한가 겁먹는가를 살핍니다. 바다를 건너고 무더위를 뚫고 와 이미 병들고 지친 저들을 엿보아서 마침내 분발하고 독려되어 싸우기를 원하는 군사에게 모두 달려가 흔쾌히 싸우도록 한다면 어찌 승리하지 못할 리가 있겠습니까. 우리나라 사람의 익숙한 기질은, 멀리 가서 공격하는 것은 잘하지 못하지만 굳게 지키는 능력은 충분합니다. 그래서 수(隋)나라 군대가 피폐하여 위세를 떨치지 못했던 것이고, 당(唐)나라 군대가 물에 빠져 스스로 물러갔던 것이니, 지금도 그 일은 천하에 당당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사이에 아첨을 위주로 하고, 나라를 팔아 권력을 쥐어 전해 듣는 사람들을 두렵게 하고 동요시키며, 대중의 마음을 기죽게 하고 의심하게 하는 자가 있다면 극률(極律)에 처하고 극변(極邊)의 유배지로 내쳐, 절대로 그 행적을 용서하지 말아서 전철을 경계하게 해야 합니다. 신이 이에 어리석은 마음이 마침내 절실하여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정성을 비록 올립니다만 저도 모르게 통곡하여 목이 쉬고 가슴이 막혀 목이 메는 것은, 이른바 ‘다섯 가지 조항’이라는 것을 허락하면 바로 정치 전반이 다 무너진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전하께서는 한갓 빈 그릇만 끌어안고 있을 뿐 자유의지로 결정하지 못하게 될 것이고 종묘사직의 염려가 당장 뒤따를 것입니다. 병이 아직 낫지 않은 아이가 멀리서 부모의 위급함을 바라보고 발을 구르고 울부짖으며 거꾸러지고 넘어지듯 하는 심정이니, 신이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여 외람되이 분수도 돌아보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런 심정에서 나온 것입니다. 옛말에 “한 사람의 선비가 바른말 하는 것이 천 명의 신하가 아첨하는 말보다 낫다.” 하였으니, 또한 한 줄기 양기(陽氣)를 오롯이 보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차라리 신을 붙잡아 저들에게 보내신다면 그동안 저들이 저버리고 위배한 것과 허다하게 능멸하고 업신여긴 것을 조목조목 꾸짖어 욕해 줄 것이니, 그러면 오히려 임금의 치욕과 나라의 수치를 만에 하나나마 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죽는 날이 곧 태어나는 날이 될 것이니, 신이 어찌 차마 얼굴을 뻔뻔스레 들고 기운을 삼킨 채 그대로 사신의 직함을 띠고 가서 주재(駐在)하여 그 대열을 따를 수 있겠습니까. 앞으로 묘당(廟堂)에서 여쭈어 처리할 사안을 반드시 저들 공사(公使)의 결정을 거친 뒤에 행할 것이니 별도로 국경을 나가서 독자적으로 응대할 일이 있겠습니까. 공경히 처벌을 기다릴 뿐 명을 받들 길이 없으니, 삼가 바라건대 명철하신 성상께서는 거울처럼 밝게 헤아리셔서 특별히 신의 직임을 체차하고 속히 신의 죄를 처벌함으로써 사신의 체모를 중히 하시고 조정의 기강을 엄숙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