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 아룁니다. 금년 6월 초순(10일)에 신이 외람되이 다급한 목소리로 부르짖어 호소한 것은 실로 떳떳한 본성이 격발되어서이지만, 지극히 어긋나고 거칠었습니다. 그런데도 처벌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마침내 자상하게도 따뜻한 유지(諭旨)를 내리시고 이어 신의 직책을 체차하지 않으셨습니다. 신은 이에 감격하고 황송한 마음에 눈물이 흘러 어디에 몸을 두어야 할지 더욱 몰랐습니다. 즉시 정성스럽고 한결같은 신의 마음을 거듭 밝혀 기필코 성상의 뜻을 돌리고자 하였기에, 하룻밤 재계하며 마음을 가다듬은 다음에 다시 상소를 지어 올리고 며칠을 공경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 되어 변란이 창졸간에 일어났으니, 이런 때에 신하 된 자가 오히려 차마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신은 다만 길에서 배회하며 정신을 놓고 마음을 안정할 수 없었을 뿐입니다. 그 후로 물러나 고향집에 머물고 있었는데 여름이 가을로 바뀌는 초가을부터 우연히 지병이 도져서 점점 큰 병이 되었습니다. 신은 본래 예전에 음양의 조화가 부족한 데다 풍토병에 손상을 입어 거의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까지 갔다가 겨우 살아난 적이 여러 번이었는데, 지금 차츰 나타나고 있는 여러 증상이 예전과 같습니다. 가슴에 비울증(痞鬱症) 있어 가로막혀 치받치고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니 팔다리는 힘이 없고 머리는 어지러우며 위장이 손상되고 숨이 가빠지는 통에 가슴이 울렁거리다가 피를 토하기까지 합니다. 이에 다만 마음속으로 헤아려 보고 증험해 봐도 부임을 바라기 어렵다는 것은 너무나도 확실합니다. 일전에 병으로 신음하던 중에 비로소 삼가 주차일본전권대신(駐劄日本全權大臣)을 차정(差定)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만, 참무관(參務官)에 대해서는 또한 변통하여 처분한 내용이 없었으니 이 일은 지난달에 있었던 일입니다. 두렵고 당혹하여 오장(五臟)이 다 무너져 내려서 벽을 따라 서성이고 침상 가를 맴돌면서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신은 타고난 자질이 용렬하고 오활하며 집요하고 융통성이 없어서 중요하지 않은 자리에서 한 가지 일을 주선하면서도 열 번을 묻고 한 걸음 옮기면서도 열 번을 돌아보지만, 끝내 그마저도 일을 그르쳐 곤란한 지경이 되고 맙니다. 이에 신을 친애하는 사람은 혀를 차며 탄식하고 동료들은 침을 뱉으며 조롱하기 때문에 항상 스스로 물러나 있는 것을 편안히 여기고 있던 터입니다. 평소 총명하고 굳센 사람이라 할지라도 만약 질병에 걸린다면 오히려 억지로 직무를 맡기가 어려운데 하물며 신은 저러한 재주에 저러한 질병까지 겸하여 지녔으니 어찌 이렇게 변고가 끝도 없이 일어나는 시절에 염치를 무릅쓰고 사명에 응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모두 낭패가 될 것이기에 엄중한 벌에 감처(勘處)되기를 기다리는 것밖에 다른 도리가 없어 병든 몸을 이끌고 와서 짧은 상소를 지어 호소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명철하신 성상께서는 곡진하게 헤아리셔서 특별히 신이 사임하는 직책을 체차하시고 속히 신의 면하기 어려운 죄를 다스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