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특별히 보내주신 편지를 가을이 된 뒤에야 비로소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야 선배가 계신 이국(異國)이 아득히 멀리 있는 곳임을 알았으니, 그 멀리서 정성스레 저를 생각해 주신 마음에 더욱 감격하였습니다. 즉시 답장을 써서 마치 서로 만나 상을 마주한 자리에 앉아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듯 해야 했는데, 처음에는 우편으로 부치는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이 문제여서 주위 사람들의 강한 만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어찌 이런 비용 문제에 구애되어 서로 막혀 통하지 못해서 한탄하고 탄식하는 결과를 초래하겠습니까. 가을과 여름이 교체되는 시기라 기후가 지내기에 적합하지는 못합니다만, 삼가 건강히 잘 계시며 또 저 이국의 풍토도 잘 맞으시리라 생각합니다. 보고 듣는 풍속이 괴상하고 의아한 것이 많으며 언어와 문자도 소통이 되지 않는 것은 형세가 참으로 그럴 수밖에 없으나, 고명(高明)의 오래 쌓은 덕망과 독실한 학문으로 동방에 성현의 책을 읽은 군자가 있다는 것을 알려서 그들 스스로 감동하여 사모하고 즐거워하며 듣게 한다면 어찌 훌륭하고 대단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지난번 이별할 때 거듭 당부한 것도 오직 이 한마디뿐이었습니다. 다만 이곳의 저는 왕래하는 동안 바쁘고 불안하여 대단치 않은 병으로 몸이 편치 않기도 하였으며, 근래에는 여가가 없어서 머물며 미적거리는 한가함을 아예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상소를 올린 일은 2월 보름에 있었는데, 동학(東學)과 서학(西學)의 사악한 학설을 변론하여 물리치고 서원을 다시 설치하여 유현(儒賢)을 맞아들이라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그러나 말과 글이 모두 분명하지 못하여 한갓 경솔히 함부로 말하는 잘못을 저지른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지난달 그믐에 경리종사(經理從事)에 임명되어 아직도 고향을 찾지 못한 데다가 병을 거듭 앓다 보니 공무가 많이 바쁜 것은 아니지만 심히 답답하고 울적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고명께서도 틀림없이 고국이 그립고 가족이 보고 싶은 심정을 누르기 어려울 때가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을 마치고 곧 돌아올 날이 또한 머지않으니, 오직 몸을 아끼셔서 무사히 돌아오시기를 기원합니다. 벗 안사응(安士應)이 월과시(月課試)에 응시하기 위해 연일 서울에 있습니다. 그를 만나면 반드시 고명에 대한 얘기를 지칠 줄 모르고 하니 귀가 가려울 때가 자주 있었을 것입니다. 듣자니 월과시가 이끌어서 도와주고 장려하여 권면하는 훌륭한 제도이며 잘 마련된 규정이라고 하니 실로 융성한 세상의 아름다운 일입니다. 이를 통해 인재를 키울 수 있으니 교화(敎化)와 관계된 대단히 중요한 일인데 대부분 관망하고 주저하여 추천받은 사람이 애당초 응시하지 않거나 혹 응시했더라도 끝까지 마치는 사람이 드뭅니다. 그런데 이 벗이 홀로 스스로 기한을 마칠 것을 다짐하며 아침 내내 마음을 안정하고 있으니 매우 칭송하여 감탄할 일이고 정성과 노력 또한 탄복할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