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사신의 직함에 차임(差任)된 이후로 명을 기다려 부임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건의 기미는 어리석고 얕은 저의 소견으로는 천고(千古)의 세월을 올려보고 내려봐도 나라가 생긴 이래로 처음 있는 변괴이며 치욕입니다. 어찌 직함에 구애되어 애통하고 절박한 심정을 함구하고 있으면서 직분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만 공손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부득이 외람되게도 감히 이렇게 소장(疏章)을 써서 지금 이미 승정원에 올렸습니다. 그러나 말과 글이 분명하지 않은 데다가 도리에 어긋나고 망녕되어서 두렵고 위축된 심정으로 물러나 엎드려 있으니, 만에 하나도 제대로 드러내 진달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실로 사변(事變)이 일어난 어려운 상황을 이용해 그 사이에서 쉽게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떳떳한 본성에서 나와 눌러앉아 있지 못하고 엄한 벌을 무릅쓰고 범한 것입니다. 저의 정성스럽고 한결같은 마음을 부디 헤아리셔서 특별히 통촉해 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