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전향약(藍田鄕約)〉남전향약(藍田鄕約):〈남전여씨향약(藍田呂氏鄕約)〉으로, 중국 섬서성(陝西省) 남전현(藍田縣)에 살던 여대충(呂大忠)ㆍ대방(大防)ㆍ대균(大鈞)ㆍ대림(大臨) 4형제가 일가친척뿐만 아니라 향리를 교화하고 선도하기 위해 만든 향약이다. 주희(朱熹)가 내용을 수정하여 《주자증손여씨향약(朱子增損呂氏鄕約)》을 만들었고 이것이 우리나라에 전파되어 우리나라 향약의 기준이 되었다. 《小學 卷6 善行》 에 이르기를 “덕업을 서로 권장하며, 과실을 서로 경계하며, 예속에서 서로 사귀며, 환난에서 서로 구제한다.” 하였다. 이 네 가지는 옛날에 백성을 교화하고 풍속을 이루려는 뜻이 전해 내려온 것으로, 천하에 시행해도 오히려 넉넉한데 하물며 한 고을에 있어서이겠는가. 본면(本面)이 비록 궁벽한 시골에 있으나, 사대부들이 서로 모여 살고 충신과 효자가 이어서 나오며 선비는 현송(絃誦)을 익히고 백성은 농사에 편안하니, 그 순수하고 아름다운 풍속이 족히 이웃 마을의 모범이 되었다. 불행히 근자에 경외(境外)의 무뢰배들이 ‘동학’이라는 이름을 빌려 우매한 백성을 미혹시켰는데, 몇십 명이 무리를 짓기도 하고 몇천 명이 떼를 짓기도 하여 소재한 곳에서 폭동과 약탈을 일으키고, 창향(昌鄕, 지금의 거창군(居昌郡))이 수탈의 근거지라고 성토하면서 아침저녁으로 경내로 들어왔다. 본면이 저들에게는 최고의 요충지이기 때문에 면민들이 살아남지 못할까 두려워하자, 이에 선비 이준악(李埈岳)을 추대하여 통장(統長)으로 삼았다. 이준악이 강개한 마음으로 취임하여 면민을 모아 놓고 고하기를 “우리 면이 비록 작으나 또한 인구가 수천 명이오. 만약 마음을 하나로 모은다면 족히 저들을 전부 몰아내고 가족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나 그리하지 않는다면 저들의 어육이 될 것이외다.” 하니, 모두 “예.”라고 답하였다. 이에 날을 정하여 규약을 세우고 십여 개의 조목으로 나누었는데, 대개 〈남전향약〉의 네 가지 조목에 근거하여 윤색하였다. 준악이 나에게 서문을 부탁하니, 내가 말하기를 “호(胡)와 월(越)이 함께 배에 탔는데, 험한 풍랑을 만나면 일찍이 마음을 하나로 모으지 않은 적이 없었던 것은 위난(危難)에 함께 처했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면약(面約)을 함께하는 우리들에게 있어서이겠으며, 집을 나란히 하여 살고 밭두둑을 인접하여 농사를 지으며 드나들면서 서로 사귀고 질병과 생사를 서로 알리는 것이 어찌 호와 월이 살아남은 뒤에 취하는 바이겠습니까. 혹 도를 품고 뜻을 구하면서도 밭을 일궈 녹봉을 대신하는 것이 어찌 선비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겠습니까마는 여기에서 우리는 세도를 볼 수 있습니다. 나의 벗 최중민(崔仲敏) 군은 젊어서부터 재주와 기량을 가졌고 두루 다니면서 널리 배워 장차 당세에 쓰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늘이 우리나라를 불쌍히 여기지 않아 점점 외세에 의해 쇠락해 가자, 중민은 모든 것을 정리하고 사천(泗川)의 고향집으로 돌아와 은거하면서 몸소 경작하여 스스로 충족하고 거처에 편액을 내걸어 ‘농와(農窩)’라고 하였으니, 아! 중민은 출처의 때와 의리를 깊이 알았다고 이를 만합니다. 무릇 봄에 밭을 갈고 여름에는 김을 매고 가을에 수확하는 것은 농사의 때를 지극히 한 것이니, 만약 겨울에 밭을 갈고 봄에 수확하고자 한다면 어찌 그것이 되겠습니까. 때를 어길 수 없음을 그대가 알았다면, 이제 농작물은 어찌해야 마땅한지와 사람들의 힘을 반드시 펴게 해야 한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기장과 피가 밭에 무성하여 실한 알곡들이 주렁주렁 가득하기를 기다렸다가 익으면 그제야 낫질해서 수확한 뒤 술을 담그기도 하고 단술을 담그기도 하니, 이것으로 농작물에 대한 것은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오늘날의 환란을 만에 하나라도 소홀하게 생각한다면 부모에게 화를 끼치고 처자식에게 해독을 남길 것이니, 배가 험한 풍랑을 만난 것에 비할 뿐이겠습니까. 이번 환란은 모든 사람이 마땅히 마음을 북돋고 힘을 모아서, 저들과는 나라를 함께할 수 없다고 맹세해야 할 바입니다. 비록 그렇지만 근심스럽고 어려운 시기에 처하여 덕업과 예속으로 권장함이 없다면, 과실이 날로 쌓이게 되어 밖에서 이른 도적을 걱정할 겨를도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네 가지 조목이 서로 필요하여 하나라도 폐할 수 없는 까닭이니 어찌 서로 힘쓰지 않겠습니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