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생은 용렬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배움은 그 요령을 터득하지 못했고 재주는 세상에 쓰이기에 부족하니, 곧 사람 가운데 하나의 저력(樗櫟)일 뿐입니다. 그런데 몇 해 전 감히 편지를 올리고 집지(執贄)를 행하여 성덕(盛德)을 지니신 상공께 가르침을 받고자 하였으니, 비록 도를 구하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나 분수로 보자면 진실로 주제넘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문하께서 넓은 아량으로 받아 주시어 허물로 여기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다정하게 대해 주시고 자상하게 가르쳐 주셨으며, 마침내 학문하는 절도와 출처의 의리 그리고 경전과 예(禮)에서 의심스러운 뜻을 갖추어 창고의 곡식을 다 내어주듯 자세히 설명하여 저를 거의 가르칠 만한 사람인 것처럼 여겨 주셨으니, 그 감격한 마음을 어찌 이기겠습니까. 다만 하루 동안 가르침을 받고 곧바로 하직하고 돌아와 어느덧 두 해가 지나니, 가르침의 효력이 이미 다하여 남은 것이 없습니다. 정말로 문하로 달려가 가르침에 흠뻑 젖고 싶지만 여러 가지 형편상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우선은 스스로 채찍질하며 힘써 나아가 조금이라도 본받아서 정성껏 가르쳐 주신 그 마음을 저버리지 않고자 하나, 또한 꾸준히 힘쓰지 못하고 하다 말다 일정함이 없다 보니, 말과 행동이 상응하지 못합니다. 스스로 앞날을 헤아려 보건대, 전진하지 못하고 제자리만 맴돌 뿐일 것이니, 가만히 생각함에 나오는 탄식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요즘 화창한 봄날에 도를 닦으시는 체후(體候)가 만복(萬福)하신지요. 부디 만수무강하시어 후학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시사(時事)가 갈수록 말하기 어려운 지경입니다. 지금 동학의 적도(賊徒)들이 날로 치성하고 있으니, 마음대로 고을을 다니면서 위협하고 약탈하여 그 화가 이르지 않은 곳이 없고 심지어 사람들을 살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일을 말하고 생각하자니 온몸이 오싹합니다. 이 일은 오직 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 수괴를 잡아 죽이고 그 도당을 징벌하여 각자 바른 데로 돌아가게 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지금 위로는 조정으로부터 아래로는 관찰사나 수령에 이르기까지 이 일을 아이들 장난으로만 보다가 모두가 이들을 호랑이처럼 무서워하자 허둥지둥 계책을 낼 줄 모르고, 칙령(飭令)도 불과 “귀화하도록 효유하라.”라고 말하는 데에 그치니, 적도들이 그런 칙령을 보고는 다만 한번 냉소를 지을 뿐입니다. 칙령이 한 번 내려올 때마다 저들은 번번이 기세를 백배로 올려 “아무도 우리를 막을 수 없다.”라고 하며 폭력과 약탈을 더욱 심하게 하니 만약 계속 내버려둔다면 장차 어떤 지경에 이를지 알 수 없습니다. 장차 저희 고을의 선비들과 함께 향약(鄕約)을 정비하여 사악한 무리를 물리칠 계책으로 삼고자 하는데, 저들과 대립각을 세우고 나면 아마도 살육의 변고가 없지는 않을 것이니 이점이 진실로 걱정스럽습니다. 그러나 위에 있는 사람들이 고식책(姑息策)만을 일삼고 백성을 위해 해악을 제거하는 거사가 없으니, 아래에 있는 사람이 이렇게 하는 것은 정말로 어쩔 수 없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어떠한지 잘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