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자에 오랫동안 안부를 여쭈지 못하여 하루도 애타게 그리워하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이런 즈음에 보내주신 편지를 받고 너무나 기뻐 아무리 읽어도 싫증이 나지 않았습니다. 덕스러운 마음은 도탑고 지극하며 말씀하신 뜻은 간절하고 지성스러워 마음속에서 흘러나오지 않은 것이 없는데, 더욱이 요즘 같은 시절에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천한 분수에 황송하고 감격스러워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하물며 다시 훌륭하고 빛나는 덕을 겸손히 감추시고 저를 실정에 지나치게 치켜세워 칭찬해 주셨으니 실로 두렵고 위축이 되어 감히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단을 물리치는 것에 대한 한 단락에 이르러서는 사람을 몹시도 두렵고 놀라게 하였습니다. 저 이른바 ‘동학’이라는 것은 양주(楊朱), 묵적(墨翟), 신불해(申不害), 한비자(韓非子)가 살았던 시대에서도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극도로 흉악하고 극도로 어지러운 일종의 별난 도리가 갑자기 우리 동방예의지국에 나타나 상도(常道)를 무너뜨리고 풍속을 어지럽혀 이토록 극심한 지경에 이르게 한단 말입니까. 아! 천도가 아직 술회(戌會)에 이르지 않았건만 끝내 우리 유가(儒家)의 도를 훼손하고 소멸시키려는 것일까요? 혈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군들 간담이 서늘해지고 머리카락이 곤두서지 않겠습니까마는 이 시대의 도를 짊어진 군자는 더욱 마땅히 분발하여 철저하게 배척해야 합니다. 그러니 집사께서 크게 탄식하고 통곡하시며 보내신 편지에 말씀하신 것을 어찌 그만둘 수 있겠습니까. “이목이 총명한 남자의 몸으로 태어났으니, 초목과 함께 썩어 사라지는 걸 어찌 달갑게 여기랴.[耳目聰明男子身 何曾甘與草木腐]”라고 한 한 구절에서, 무한한 경륜을 가슴속에 품고 계신 것을 더욱 징험할 수 있었고 사람에게 격앙하고 분발하는 마음이 들게 하였으니, 어찌 의리를 부지하고 사직을 바로잡은 돌아가신 선정(先正)의 공적이, 가학(家學)을 물려받은 훌륭한 후손에게 전해져서 편지를 쓰는 동안 《춘추(春秋)》의 의리를 잠시도 멈출 수 없었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몹시 부럽고 축하하는 마음을 더욱 가눌 수가 없습니다. 삼가 혹독한 섣달 추위에 형제간에 우애하며 덕을 기르시는 체후가 이정(頥貞)의 도를 독실하게 누려 만년에 도를 지키는 즐거움이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강학으로 익힌 학문이 이미 무르익고 뜻을 정한 힘이 이미 견고해지셔서, 책상 위에 놓인 《논어》 한 권에 실려 있는 성인의 언행과 제자와의 문답에 담긴 의리가 환하게 오늘날 귀와 눈이 된다는 것을 모두 아셨을 것이니, 간절하게 사모하고 기리기를 어찌 밤낮으로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하찮은 일이나 할 수 있는 얕은 국량과 세사(世事)에 얽매이는 보잘것없는 재주로 궁벽한 시골에서 불우하게 지내다 보니, 먼저는 어리석음을 깨우쳐 줄 스승이 없었고 나중엔 완고함을 바로잡아 줄 벗이 드물었습니다. 이렇게 안착할 바탕도 없고 성장할 뿌리도 없다 보니 부족하고 낡은 서책으로 공부하고는 있으나 마음이 외물과 접하기만 하면 조석으로 바뀌고 변하며 잡아 지킬 때도 있고 놓아 버릴 때도 있어서 일정함이 없습니다. 매번 마음이 이끌려 달아날 때마다 그 달아난 마음을 수습하여 몸으로 들어오게 할 힘이 부족하였습니다. 이와 같은데 어찌 앞으로 나아가는 발전이 있겠습니까. 일찍부터 유학이 융성한 고을에 태어나 훌륭한 스승의 문하에서 공부하여 실제적으로 한두 가지라도 성인이 남긴 가르침을 들어 보지 못하고 외로이 천지간에 그저 그런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 한스럽습니다. 그러나 근본이 부족한 것을 어쩌겠습니까. 그저 몹시 두렵고 부끄러울 뿐입니다. 〈백록동규(白鹿洞規)〉와 〈남전여씨향약(藍田呂氏鄕約)〉과 범씨(范氏, 범준(范浚))의 〈심잠(心箴)〉은 편지에서 지시하신 대로 벽에 걸어 두고 살펴보며 반성해야 마땅한데 외지에서 몸담을 집 한 채가 없어 이것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줄곧 해이하게 지내고 있으니 심히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 삼가 이른 아침과 늦은 저녁에라도 찾아뵙고 높은 가르침을 받고 싶으나 장제(章製)가 예전과 달라 출입에 자못 관계가 되어서 저의 마음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죄가 실로 커서 스스로 변명할 수도 없습니다. 부디 저를 버리지 마시고 다시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오직 노력을 기울여 덕을 쌓고 학문을 닦아서 우리 유학의 도를 넓혀 나가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