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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비서류찬 조선교섭자료 秘書類纂朝鮮交涉資料
  • 기사명
    전라 충청 양도 민란에 관한 스기무라 후카시(杉村濬) 의견서

    원문보기 원문/국역

  • 날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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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5월 22일 기밀 제63호 본43 보고(1894년 5월 27일 접수) 전라 충청 양도의 민란에 관한 비견(鄙見) 상신 전라도와 충청도 양도에서 난민이 봉기하여 관리를 내쫓고 성읍을 장악하여 그 기세가 매우 창궐하다는 것은 계속되는 보고서에 의해 잘 알고 계실 것으로 믿습니다. 지금까지의 보고에 따르면 난민이 점거하거나 횡횡한 시읍(市邑)은 전라도에서는 고부(古阜), 태인(泰仁), 부안(扶安), 정읍(井邑),고창(高敞),무장(茂長), 나주(羅州), 함평(咸平), 무안(務安), 영광(靈光) 등 각 읍입니다. 충청도에서는 회덕(懷德), 진잠(鎭岑), 청산(靑山), 보은(報恩), 옥천(沃川), 문의(文義) 등 각 읍입니다. 그렇다면 전라도와 충청도 양도의 약 3분의 1에 걸치는 것이므로 조선국에서는 실로 쉽지 않은 변란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근래 다른 각 도에서도 그곳에 있는 지방관의 학정에 괴로워하고 정부를 원망해 자칫하면 민요(民擾)가 발생할지도 모르는 때이므로 전라, 충청 양도의 난당(亂黨) 세력이 어떻게 되는지에 따라서는 그들도 이에 호응하여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럴 때는 경성은 완전히 고립되는 형세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원래 경성에는 신식(양식) 상비군이 5천 명이 있다고 하지만 그 실제 수는 이보다 적을 것이고 이 병졸들은 평소 보행 훈련에 그쳐 호국의 정신에서는 보통 시민과 다르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를 지휘하는 대소의 대장(隊長)은 대체로 문벌이 있는 집안사람들이기 때문에 단지 그 임무를 맡을 뿐이고 평소 조련(調練)이라고 하여도 모두 하사관에게 맡기고 그들 자신이 부대를 지휘하는 사례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이기 때문에 이전에 파견된 장위영의 병사들은 각 영 가운데 정예병이라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현지에 도달하자 도망자가 날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사기가 낮아지고 나아가 난민의 예봉을 감당할 수 없어 마침내 다시 새로 병사를 파견하자는 논의에 이른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그러므로 관과 민의 승패는 새로 보내는 병사가 도착한 뒤에 정해질 것이므로 앞으로 3~4주 안에는 대략 결정될 것이지만, 만일 불행하게도 관군이 패하고 민군이 승리해 북상하는 일이 생긴다면 조선 정부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지금 미리 이를 연구하는 것은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의견에 따르면, 제1책, 정부는 민중의 바람을 받아들이고 민중의 바람에 부응하는 것을 목적으로 서둘러 내정을 개혁하고 국민이 가장 싫어하는 폐해를 제거함으로써 난당을 회유하여 점차 진정할 방법을 취할 것. 제2책, 중국에서 군대를 빌려 난당을 처치할 것. 제1책은 여러 대신 가운데 두세 명이 이러한 의견을 갖고 있지만 공개적으로 상주하는 것을 꺼리고 은밀히 이를 말하고 있습니다. 제2책은 민영준이 주장하는 것이지만 이의가 많아 아직 행해지지 않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요컨대 제1책은 현재 권세가 커진 민씨에게 불이익이기 때문에 국왕의 영단이라도 쉽게 행해질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를 행하려고 한다면 민씨를 멀리하여 이를 정부 밖으로 쫓아내지 않는 한 그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대사업은 조선 조정의 신하들이 힘이 약해 성공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앞으로 난민의 세력이 더욱 커질 때에는 필시 제2책의 고식수단을 취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중국군이 만일 (공개적 통지 절차를 밟아) 조선으로 들어오게 된다면 장래 조선의 형세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도 꾀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일단 우리 관민 보호를 위해 또 청일 양국의 권형(權衡)을 보호하기 위해 민란을 진정시키고 청군이 철수할 때까지 공사관을 호위한다는 명분에 따라, 구 조약에 따라 출병을 할지 또는 청군이 조선으로 들어오더라도 일본 정부가 별도로 파병의 논의를 하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상은 너무 급한 것 같지만 미리 결정해 두는 것이 긴급히 필요할 것입니다. 1894년 5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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