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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비서류찬 조선교섭자료 秘書類纂朝鮮交涉資料
일러두기

부산 무로타 요시아야(室田義文) 4월 초4일(양력 5월 8일) 동학당도(東學黨徒)가 통문(通文)을 법성읍(法聖邑)의 이경(吏卿)에게 보냄. 명철하신 성상께서 위에 계시는데 생민이 모두 도탄에 빠진 것은 무슨 이유인가? 민폐의 근본은 이포(吏逋)에 그 이유가 있으며, 이포의 근본은 탐관(貪官)에게 그 이유가 있으며, 탐관이 법을 범하는 것은 집권자의 탐욕에 연유한다. 아! 혼란이 극도에 달하면 다스려지고 어둠이 변하면 밝음이 되는 것은 변하지 않는 이치이다. 지금 우리가 백성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는 데에 있어 어찌 관리와 백성의 구별이 있겠는가? 그 근본을 구명해 보면 관리도 백성이니 각 공문부(公文簿)의 이포 민막(民瘼) 조항은 그 수를 따지지 말고 와서 알려라. 마땅히 구별할 방도가 있다. 가져올 것을 걱정하지 말고 시각이 다름을 개의치 말고 깊이 유념하여 남김없이 하도록 하라. 또 우리의 오늘의 거사는 위로는 종묘사직을 보존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일동은 죽음으로써 맹서하였으니 두려워 동요하지 말라. 다만, 앞으로 이정(釐正)하려는 것을 열거하면, 첫째로 전운영(轉運營)이 관리 및 백성들에게 폐단이 된 것, 둘째 균전관(均田官)의 폐단을 제거하려다가 도리어 폐단을 낳은 것, 셋째 각 시정(市井)에서 금전으로 나누어 세금을 징수한 것, 넷째 각 포구의 선주들이 강제 탈취한 것, 다섯째 타국의 암매상들에게 고가로 사들인 것[前貸], 여섯째 염분(鹽分)에 대한 시장세의 일, 일곱째 갖가지 물건을 도매로 팔아 이윤을 취한 것, 여덟 번째 백지(白地, 미간지)에 징세하고 송전(松田)에 기진(起陣)한 것, 와환(臥還)의 발본 등 여러 가지 폐막을 모두 기록할 수가 없다. 이때에 이르러 우리 사농공상의 네 가지 생업에 종사하는 백성이 한마음으로 협력하여 위로 국가를 돕고 아래로 빈사상태에 있는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면 어찌 다행스럽지 아니한가? 제중의소(濟衆義所) 4월 15일(양력 5월 19일) 초토사(招討使)의 전보 지금 출진하는 군대의 군량을 미리 준비해야 하므로 익산(益山)군수 정원성(鄭元成)을 운량관(運糧官)으로 발령하였기에 이에 아룁니다. 저들은 영광으로 들어갔다고 하는데, 영광쉬(靈光倅, 군수)는 그 무리가 읍으로 들어올 기미를 알고 바다로 피신하면서 2대 병력을 육로로 보내어 뒤를 차단하게 하고 후속 심병[沁兵, 강화영(江華營)]이 오기를 기다려서 전후로 대응할 계획입니다. 같은 날 미시(未時) 초토사의 전보 동학도들의 반은 영광에 주둔하고 있고 반은 함평과 무안 등지로 갔다고 합니다. 어제 2개 부대의 병력을 파견하였고 오늘 새벽에 또 2개 부대의 병력을 파견하였으니, 차례로 연달아 진격하여 후원하게 할 계획입니다. 4월 17일(양력 5월 21일)에 받은 충청감사의 전보 지금 진잠(鎭岑)의 보고를 보니, “저들은 이미 해산했는데 군대는 계속 머물러 있으니 매우 민망합니다.”라고 합니다. 또 출동한 군관(軍官)과 탐교(探校, 정찰군관)의 회보를 받아 보니, “청옥(靑沃, 청산과 옥천) 등지에는 아직 아무 동정이 없으며 혹 귀화한 사람도 있다.”라고 하는데, 이 무리의 종적은 섬광과 같아 형적을 알 수 없으므로 다 믿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형편상으로 말한다면, 많은 군대가 오랫동안 나가 주둔하고 있어 민망하므로 영문의 군병과 상인 군병은 지금 돌아오라고 일렀습니다. 그리고 현재 완백(完伯, 전라감사)의 전보를 잇달아 받아 보니, “남쪽의 소요는 갈수록 확대된다.”라고 하므로 본도의 계엄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청영(淸營)의 병정 200명을 전날에 은옥(恩沃, 은진과 옥천) 두 읍의 요충지로 보내어 그들로 하여금 예방하게 하였으므로, 그들이 돌아오면 자세히 아뢰겠으니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지급할 것도 계속 대 주기가 어려운 형편이니 매우 걱정스럽습니다. 4월 18일 초토사의 전보(양력 5월 22일) 오늘 동학도가 모여 있는 영광 지방으로 진군하겠습니다. 같은 날 전라감사의 전보 영광 공형(公兄, 郡吏)의 문장(文狀)을 보니, 해당 군수가 세미(稅米) 관계로 9일 전운소(轉運所)로 가자 저들이 수령이 없는 틈을 타서 12일에 성안으로 들어갔으나 본 군수는 아직도 고을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같은 날 다시 영광의 일은, 그 비류(匪類)들이 아직도 성내에 주둔하고 있어 해당 군수가 고을로 돌아오지 못하여 달리 조처할 수 없으니 염려스럽습니다. 이에 아뢰니 양찰하시기 바랍니다. 4월 20일 좌의정 조병세(趙秉世) 앞으로 보낸 초토사 홍계훈(洪啓薰)의 전보(양력 5월 24일) 19일 오시(午時, 오전 11시~오후 1시)에 정읍현에 도착하여 영광군의 보고를 보니 저들은 경군이 병대를 나누어 계속 진격해 온다는 말을 듣고 16일 진시(辰時)에 1만여 명이 함평 지방으로 물러났다고 하므로, 내일은 흥덕(興德)에 진을 쳐서 뒷길을 차단하고 나목(羅牧, 나주목사)에게 지휘하게 하여 요충지를 엄하게 방비해서, 심병(沁兵)이 하륙(下陸)하면 앞뒤로 공격할 계획입니다. 초토사 홍계훈. 같은 날 전라감사의 전보 지금 함평의 보고를 받아 보니, 16일 신시(申時)에 동학도 6,000~ 7,000명이 영광에서 곧바로 본현(本縣)으로 들어와 기를 세우고 포를 발사하였습니다. 그들은 제각각 총과 창을 들었고 말을 탄 자가 수백여 명이나 되며 더러는 갑옷을 입고 전립(戰笠)을 썼으며, 더러는 색깔 있는 수건을 두르고 칼을 휘둘러 좌충우돌하며 곧장 동헌으로 향하는 것을, 이교(吏校)와 노령(奴令) 및 수성군(守成軍) 100여 명이 저지하였는데, 관문을 부술 즈음에 부상당한 삼반(三班, 이교와 노령)이 절반을 넘었으며 그 나머지는 모두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들은 각 청사에 진을 치고 식량을 부호(富戶)에게 분담ㆍ안배시키는 한편 그들을 영접하여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형(公兄)에게 곤장을 치고 포리(逋吏)들의 성명이 적힌 각 문부(文簿)를 거두어 오게 했다고 합니다. 이상 어제 24일 초토사와 감사로부터 전달된 전보에 의하면, 경군의 정토(征討)부대가 영광군으로 향하여 진군하였으므로 동학당은 퇴각하여 함평현을 지키려고 이를 함락시킨 것 같습니다. 최근 탐문한 잡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각 대신의 합계(合啓)에 의한 국왕 폐하의 하교(지난달 22일 입수) 1. 전교(傳敎)하기를, 고부군수(古阜郡守) 조병갑(趙秉甲)을 격식을 갖추어 잡아와 남간(南間) 에 수감하라. 1. 윤음(綸音)이 없을 수 없으므로 삼현령(三懸令)으로 지휘하여 효유토록 하라(삼현령은 국가의 대사에 당면하여 긴급한 명령을 전달하기 위하여 개설한 것이다). 1. 외지의 방백과 수령으로서 탐학한 자는 일일이 논죄하여 민심을 안정시키도록 하라. 1. 대신 이하 말단 관원에 이르기까지 이와 같이 위급한 때를 당하여 어찌 수수방관할 수 있겠는가? 특별히 백성을 편하게 하고 나라를 도울 수 있는 대책을 제출하도록 하라. 1. 전라감사에게 특별히 월봉(越俸)하는 법을 시행하도록 하라. 1. 도주한 수령은 죄의 경중을 따져 징계하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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