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4월 21일(양력 5월 25일)에 받은 전라도 감사의 전보 17일 영광에서 보낸 전보를 받아 보니, “동학도 수천 명이 어디서 왔는지 잘 모르겠지만 바로 본군(本郡)에 들어와서 군기고에 불을 지르고 호적을 다 태워 버리고 관청의 문도 다 파괴한 후 그날 어디론지 가 버렸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안의 보고를 받아 보니, “본현(本縣)의 삼내면(三內面)에 있는 동학도 7~8천 명은 절반은 말을 타고 절반은 보행을 하면서 몸에는 갑옷을 입고 투구를 썼습니다. 그리고 제각기 긴 창과 큰 칼을 가지고 다닙니다. 그들은 18일 하룻밤을 머문 뒤에 나주로 갔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동 22일(양력 26일) 오후 초토사의 전보[이것은 전주에서 전보를 보낸 날짜이며 흥덕(興德)에서 보낸 날짜가 아님] 흥덕에서 진을 치고 있다가 적병이 나타나면 추격하려고 하므로, 총환(銃丸)ㆍ유시(流矢)ㆍ연환(鉛丸) 등을 넉넉하게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같은 날 술시(戌時)에 받은 초토사의 전보 함평에 도착하였을 때 동학도 수천 명을 만나 교전하려고 하자 그들이 산으로 올라가서 크게 고함치며 말하기를, “이 군대는 우리 주상의 명령을 받고 내려온 사람들이므로 탐관들의 군대와 달라 결코 저항할 수가 없습니다. 만일 싸움을 벌이면 우리들은 역적의 죄를 면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경군이 동쪽으로 가면 그들은 서쪽으로 달아나고 경군이 서쪽으로 가면 그들은 동쪽으로 달아나므로 형세상 접전하기가 매우 어려우니 민망스러울 뿐입니다. 같은 날에 받은 전라감사의 전보 동학도들이 남문에 걸어 놓은 투서를 보니, “경군에는 저항치 말고 향병(鄕兵)은 반드시 격파하여 탐관들을 모두 쫓아내고 간교한 관리들은 모두 초멸하겠다. 이것은 우리들이 국가를 돕고 백성을 편하게 하는[보국안민(輔國安民)] 본뜻이므로 비록 100년이 되더라도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라고 하였습니다. 수일 전 경성의 어떤 의원 앞에는 출정한 경군 부상자 1명을 치료하기 위해 온 사람이 있었다. 그 부상자는 대퇴부에 관통상을 입은 자로서 이미 1주일쯤 경과하였기 때문에 그 상처가 거의 썩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부상자를 데리고 오는데 병사 약 20명이 따라왔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